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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발디의 사계-어느 환자의 애청곡

by #$%@#$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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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있는 한 환자에 대한 얘기다. 그는 다른 층에서 생활하다가 필자가 있는 층으로 옮겨온 사람이다. 그는 식사 시간이 되면 필자가 식당 한 구석에 지정석처럼 자리잡고 있던 식탁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했다. 한동안 둘은 서로 말이 없었다. 그는 식후에 한웅큼이나 되는 약을 끼니 때마다 먹었다.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드시오?"

"이렇게 먹지 않으면 머리가 깨지고 미칠 것만 같아 살 수가 없어요. 얘기가 깁니다."

또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그는 늘 메모지와 볼펜을 갖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적었다.

"무얼 그리 열심히 적습니까?"

"와이프한테 보낼 편지 내용을 수집하는 중입니다"

"편지요? 면회올 때 들려주면 되잖소?"

"면회를 올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늘 나라에 있어요."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편지를 보내다니요. 편지가 가나요?"

"반송된 적이 없으니까요. 제 주소를 안 적습니다. 와이프 주소도 그냥 하늘나라입니다."

"우체국에선 그 편지를 어떻게 할까요?"

"그건 모르죠. 어찌 뙜든 와이프는 내막을 알지 않을까요?"

"아내 분은 왜 돌아가셨소. 아프셨나요?"

"자살했습니다."

둘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필자가 그에게서 들은 얘기는 하도 기막히고 슬픈 얘긴데다 너무 길어서 여기에 적는 일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 얘기를 제삼자가 소재로 삼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말이다.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그가 대화의 말머리를 돌렸다.

"그 후로 신경성 두통으로 너무나 고통이 심해 의사와 상담한 뒤 요양원에 입원해 있기로 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와이프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두통을 안정시키고 신경 쓰는 일을 억제하기 위해 이렇게 약을 먹습니다."

그 후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더 가끼이 지냈다. 언제부턴가 그는 필자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나저나 형님은 맨날 무얼 그리 열심히 듣습니까?"

"클래식 음악이요."

"클래식이요? 그거 듣는 방법을 아십니까?"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음악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간단해요. 유튜브를 설치하고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들으면 돼요. 클래식 좋아합니까? 뭐, 좋아하는 곡이라도 있습니까?"

"비발디의 사계요. 그 중에 가을이요."

재빨리 그 곡을 찾아 핸드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음악을 듣자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클래식 대화자를 찾다니, 그것도 병원에서 말이다.

 

비발디의 사계

 

사계라는 이름의 유명한 작품을 쓴 비발디(안토니오 비발디, 1678-1741)는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유명했다. 또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직자이기도 했다.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소나타, 3중주곡, 첼로곡, 오페라 등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썼다. 그중 바이올린 협주곡, 소나타 등에는 지금도 연주되고 있는 곡들이 많다.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관계로 어렵고도 화려한 기교를 곡에다 삽입시키기도 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흔히 사계라고 부르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op.8의 1-4로 되어 있는 네 개의 곡에는 사계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각 곡은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고 계절의 특성을 나타냈다. 각 곡은 3악장씩 나뉘어 있어 사계는 총 12악장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연주 시간은 40분이다.

 

제1곡 [봄] E장조 op. 8-1

1악장 알레그로 E장조4/4박자.

따뜻한 봄이 오는 소리, 작은 새들의 지저귐,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폭풍이 불어오고 번개가 번쩍인다. 다시 날이 개고 새들이 지저귄다. 

2악장 라르고 E장조 3/4박자

꽃이 핀 목장에서 쉬고 있는 목동들의 노래,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3악장 알레그로 E장조 12/8박자 

봄을 즐기는 요정이 나타나 목동들의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제2곡 [여름] g단조 op. 8-2

1악장 알레그로 논 몰토 g단조 3/8박자

무더운 여름 날씨. 뻐꾸기와 비둘기 소리가 들리고 폭풍이 불어온다. 

2악장 아다지오 g단조 4/4박자

폭풍전야의 불안한 상태. 번개, 천둥 소리 등이 묘사됐다. 

3악장 프레스토 g단조 3/4박자

갑작스런 폭풍, 번개와 천둥에 이어 폭우가 쏟아진다.

 

제3곡 [가을] F장조 op.8-3

1악장 알레그로 F장조 

마을 사람들의 춤과 노래 소리가 들리고 주정뱅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2악장 아다지오 몰토 f단조 3/4박자

주정뱅이와 잠자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춤을 출 수도 없다. 

3악장 알레그로 F장조 3/4박자

사냥하는 장면이 묘사됐다. 사냥꾼은 이른 새벽부터 총과 뿔피리를 들고, 개를 데리고 사냥하러 나간다. 사냥감을 발견하지만 도망간다. 총소리가 들리고 개가 짖는다. 드디어 사냥감을 잡았다. 다시 사냥의 주제가 들린다.

 

제4곡 [겨울] f단조 op. 8-4

1악장 심한 추위와 차가운 눈, 그리고 찬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추워서 덜덜 떠는 모습이 묘사된다. 추위에 못이겨 발을 동동 구른다.

2악장 라르고 E플렛 장조 4/4박자

밖에는 만물을 적시는 비가 내리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난로가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3악장 알레그로 f단조 3/4박자

얼어붙은 강 위를 사람이 엉금엉금 걷다가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 걷는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남풍이 불어오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는 않았으나 봄이 오는 소식을 전하면서 곡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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