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선견지명이 없을까? 왜 앞을 내다보는 눈이 없을까? 왜 좀더 현명하지 못했을까?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머지 않아 죽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남아있는 가족에게 짐이 될만한 것들은 되도록 남기지 말아야지. 우선 책장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더 이상 읽거나 거들떠볼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책들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자녀들에게 주거나 쓰레기로 내다버렸다.
건강이 호전되면서 단석정 시리즈를 집필하게 되고 인용하거나 다시 들춰보고 싶은 책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책장에는 이미 그 책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선견지명 없는 어리석음. 이렇게 금방 필요하게 될 책들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휴대폰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자니 글씨가 너무 작아 눈이 감당해내지 못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네이버나 유튜부에서 눈에 쉽게 띄는 정보를 얻어내야 할 형편이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도 예전처럼 실감이 나질 않는다. 아무런 감동도, 의미도 없는 날이 되고 말았다. 젊었을 적에는, 그리고 자녀들이 아직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1년 중 비중이 큰 날이었다. 회사에서는 급여를 하루나 이틀 정도 미리 주었고, 더구나 12월은 보너스가 지급되는 달이어서 주머니는 부유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두둑했다. 회사에서는 22일이나 23일 쯤, 유명 호텔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 식당에 가서 두툼한 스테이크를 써는 직원 회식을 갖곤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두어 권 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작가 오 헨리(O Henry)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idney Porter, 1862-1910)이다. 1906년에 쓴 크리스마스 선물(The Gift of the Magi)의 줄거리를 보면 이렇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각자 갖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팔아서 상대방을 위해 마련한 선물을 준다. 아내 델라는 머리를 잘라 팔아서 남편 짐의 시계줄을 샀고, 짐은 시계를 팔아 아내에게 줄 머리빗을 샀다. 결국 각자의 선물은 지금 당장 서로에게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선물들은 선물 자체보다 더 소중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되었다.
델라가 갖고 있던 돈은 1달러 87센트. 하는 수 없이 그녀는 황금빛 물결처럼 출렁이고 빛나는 긴 머리를 20달러에 팔고 그 돈으로 남편의 시계에 어울리는 줄을 샀다. 짐은 할아버지로터 아버지를 거쳐 자신에게 전해진 멋지고 훌륭한 시계를 팔아 아내가 평소 갖고 싶어했던 머리빗을 샀다. 머리를 잘라 시계줄을 산 아내, 시계를 팔아 머리빗을 산 남편. 부부는 각자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짐은 아내의 없어진 머리를 보고 허탈하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내가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내 머리카락은 하나하나 다 셀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셀 수 없을 거예요"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미뤄 둡시다."
아기 예수에게 가져온 동방박사(Magi-현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의 선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당장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훗날 그의 죽음을 위한 것들이었다.
이 책은 몇 쪽 안되는 짧은 단편 소설이니 이번 크리스마스 절기에 꼭 한번 읽어보도록 추천한다.
디킨즈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은 내년 크리스미스 시즌에 소개하기로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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