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강 가에서 밤에 손님을 전송하는데,
단풍잎 갈대꽃 위에 가을 바람이 쓸쓸하였네.
주인 말에서 내리고 객은 배에 탓는데,
...
작별할 때 아득한 강물에는 달빛만 젖어 있었네.
문득 물 위에 퍼지는 비파 소리 듣고,
주인은 돌아갈 생각 잊고 객은 떠나지 않았네.
비교적 긴 시인 비파행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비파행 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원화 10년(815년)에 구강군 사마로 좌천되었다. 이듬 해 가을 분강 포구에서 밤에 손님을 전송하다가 어느 배 안에서 비파 타는 소리를 들었다.]
연주자를 불렀으나 좀처럼 나타나지 않더니 많은 요청 끝에 마지못해 비파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시의 몇 줄을 인용합니다.
비파의 음을 고르면서 서너 번 줄을 뜯는데,
곡을 이루기도 전에 이미 정이 실려 있었네.
줄마다 마음 억누르지만 소리마다 슬픔 서려,
평생의 불우함을 호소하듯 하였네.
눈 내리깔고 손 가는대로 연이어 뜯으니,
마음 속 무한한 사연을 모두 말해주는 듯 했네.
굵은 줄은 낮은 소리를 내어 소낙비 같았고,
가는 줄은 가늘고도 애절하여 개인의 정을 얘기하는 듯,
굵은 소리 가는 소리 뒤섞어 뜯으니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듯 하고,
...
소리는 흐느끼는 샘물에 뜨고,
얼음덩이 여울물에 떠내려가듯 했네.
줄이 엉켜 끊어졌는가
잠시 소리 멈추니
이 때의 소리없음은 소리나는 것보다 더욱 감동적이었네.
연주가 끝나고 시인은 여인의 슬픈 인생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인도 젊었을 때는 잘 나가는 연주자였다는 것, 한 번의 연주에 비단이며 값진 패물이 모였고, 귀한 물건은 아까운 줄 모르고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여인도 나이 들어 찾아오는 사람 적어지고 마침내는 손님이 끊기고 얼굴은 예전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장사꾼과 혼인하게 되고, 남편은 돈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장사하러 떠나고 집을 비우는 때가 잦았으며 여인은 비파로 외로움을 달랬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여인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대화였던가! 그날 밤 둘이 나눈 대화의 감동은 십 년 동안 읽은 책보다 진했고 수 백, 수 천의 친구와 더불어 의미없이 떠들어댄 이야기보다 깊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여군일석화 승독십년서(與君一夕話 勝讀十年書)>가 아닐까요!!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연주 듣고 나니,
마치 신선의 음악 들은 듯 잠깐 사이에 귀가 깨끗해진 듯 하네.
사양 말고 한 곡조 더 들려주게나.
그대 위해 글로 비파행을 지어주겠네.
내 이 말에 감동된 듯 한참 서 있다가,
물러나 잽씨게 줄을 튕기니 줄가닥 다급해지고,
슬프기는 먼저 곡과 같지 않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눈물 흘렸는데,
누가 가장 많이 눈물울 흘렸는가
강주사마인 내 푸른 저고리가 눈물에 흠뻑 젖었도다.]
시를 다 옮겨 적기에는 너무 길어서 중간중간 생략한 곳이 많습니다. 내용이 아쉽게 느껴지거나 시의 전문을 다 읽고 싶으신 분은 블로그나 유튜브에 있으니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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