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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채근담을 통해 만난 시인 조지훈

by #$%@#$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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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으로 채근담을 구입한 것은 1970년 여름, 군에서 첫번째 휴가를 나왔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번역본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그 책이 유일한 번역본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달려간 곳은 어느 대형 서점이었습니다. 그 책을 구하고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 여러 번역본들이 나왔습니다. 틈 나는대로 그 책들을 한두 권씩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단석정의 책장에는 10여권의 번역본들이 꽂혀 있습니다. 책들은 모두 원본의 배열 그대로 전집과 후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지훈 시인의 번역본은 배열 순서가 다릅니다. 전후집을 모두 뒤섞어서 내용이 비슷한 것끼리 모아 다시 네 편, 즉 자연, 도심(道心), 수성(修省), 섭세(涉世)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자연편으로 시작하는 내용의 첫 구절은 원본 전집 82절의 풍래소죽(風來疏竹)...입니다. 

 

시인 조지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몇몇 시와 서적들을 들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만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인격과 해박한 지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채근담을 통해서였습니다. 시를 외우고 음악을 듣고 채근담같은 고서를 읽는 일은 때로 외롭고 긴 투쟁과도 같은 일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힘과 격려, 용기와 지치지 않도록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일은 종종 책을 통해 일어납니다. 

원본 전집 154절을 그는 수성편 80절로 바꾸어 실었습니다. 

 

[절의는 청운의 자리라도 내려다 볼만하고,

문장은 백설(白雪)의 곡보다 높을지라도...]

 

시인은 이 구절에 나오는 백설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했슴니다.

 

객이 야중에서 노래하는 자 있으니 그 처음은 하리파인(당시 유행하던 대중 노래)이라 국중에 속하여 화창하는 자 수천인, 그 양아초로를 이루자 국중에 속하여 화창하는 자 수백인, 양춘백설(陽春白雪-뛰어난 시를 바탕으로 만든 곡)을 부르자 국중에 속하여 화창하는 자 수십인, 이는 그 곡이 높을수록 화창하는 자 더욱 적어짐이라.

 

외로운 나그네처럼 홀로 가야하는 인생길에서 좋은 길동무와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채근담을 통해서 홍자성이라는 도인도 만났지만 조지훈 시인같은 스승도 만났습니다.

 

채근담의 가르침 하나.

 

책을 읽으면서 성현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필생에 지나지 않고

 

독서(讀書)에  불견성현(不見聖賢)이면

위연참용(爲鉛槧傭)이요

 

연참용은 옛날에 글을 베끼는 것을 직업으로 살아가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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