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석정의 책꽂이에는 50여년 전 필자가 영어를 공부할 때 사용했던 교재가 한 권 꽂혀 있습니다. 그 책에 있는 내용 가운데 한 줄을 옮겨 봅니다.
To say a person is kind is to say that he is gentle, considerate and charitable.
사람이 친절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젠틀하고, 배려심 있고 자애롭다는 말이다.
필자는 60살이 넘어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아닌 여행객이 시내 버스를 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버스의 내부 시설, 제도와 운영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버스를 타 보기로 습니다. 물론 한두 번 타보고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시도해 봤습니다.
어느 날엔가 버스에 올라 차비를 내려고 하는데 운전 기사가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더니 필자를 아래위로 훑어보았습니다. 여성 운전자였던 기사는 할머니라고 불러도 될만큼 나이가 들어보이는 노년에 가까운 장년의 여성이었습니다. 기사는 나에게 몇살이냐고 물었습니다. 60이 넘었다고 대답하자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손짓으로 그냥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차비 안 내도 돼요.(You don't have to pay.)
1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1,000원 정도)에 불과한 차비. 그 돈이 굳었다는 생각보다도 배려하는 마음, 친절한 행동이 보여주는 고마움,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자리에 앉아서는 승객이 타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곧 출입문이 있는 차의 앞 부분을 인도의 턱까지 낮추어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승
객이 타기 쉽게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러한 버스를 닐링 버스(kneeling bus) 부릅니다.
언젠가 또 한번은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더니 차를 낮추고는 앞 문이 열리고 바닥에 달린 발판이 인도까지 뻗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발판을 타고 전동 휠체어를 탄 승객이 승차했습니다.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쪽 창가에 있는 승객들을 모두 일어나게 하고는 의자를 접어 벽에 붙인 뒤 휠체어를 그 자리에 세우고 차 벽에 부착된 벨트로 잘 묶었습니다.
필자는 생각했습니다. 혼자서도 집밖 외출과 이동이 자유로운 사회, 제반 시설을 갖춘 장비와 제도, 복지 국가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을 목격했습니다. 한 승객이 버스에서 소란을 피우자 기사가 차를 멈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승객에게 하차를 명하자 승객은 아무 말없이 내렸습니다. 미국의 경우 승객의 안전과 관계가 있는 경우에 일정 부분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친절하고 인정 많은 기사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루 몇 차례에 지나지 않지만 오지를 오가며 운행하는 버스,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버스는 그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운행 수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승객이 기사를 폭행하고 난동을 피워도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 사회,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서두에 소개한 영어 문장은 낯설고 어렵게 여겨질 지 모르나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언젠가는 여러분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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